모든 것들이 사라져 간다. 김혜수가 음악에 맞춰서 춤을 추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city beat은 오뎅빠로 바뀌었고 다시 오래 지나지 않아 왓슨스로 바뀌었다. 그런 미용 마트로 바뀔 꺼 였으면 바뀌지나 말지. 지금 생각하니 점원의 ‘로스트인트뤤스뤠이션’ 발음도 매력적이었던 것 같은데…
두꺼바 두꺼바 헌 집 줄께 새 집 다오.
인터넷이 모든 것을 죽이고 있다고 어느 술 자리에서 말했던 선배는 인터넷에 블로그진을 만들었다. 남아 있는 종이로 된 음악잡지 보다는 나은 수준이지만 사실 인터넷이라는 매체는 낭만이 없다. 그로 별로 멋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와 친구들이 하는 아워타운도 인터넷이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와 동시에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난 아직도 일찍이 망해버린 MDM을 가끔 보곤 하는데 그 이유는 누런 종이를 넘겨보는 맛이 있기 때문이다. 절대 핀업걸 때문이 아니다. 하지만 그 잡지가 종이가 아니였다면 다시 펴 볼 일은 없었을 것이다. 레코드 샵들은 망했지만 그 자리를 꽤차고 들어온 인터넷 음원 업체들은 한 없이 구렸다. 음악을 돈 주고 할 수 있는 일이란, 미니 홈피에 음악을 걸어 놓는 것 뿐이었다. 아이튠스를 바란 것도 아니다. 대자본 앞에서 어떤 사이트가 개성과 안목을 가질 수 있을까? 나는 아직도 판을 좋아한다. 물질인 씨디와 바이널, 테이프는 매끈한 아이팟 속에 잡히지 않는, 음질은 별반 차이 없다는 mp3이 가질 수 없는 기억을 쥐고 있다. 오래 전 나와 같이 절을 다녔던 사람은 내게 이야기 했다. 내가 선물해 준 mixtape를 아직 가지고 있다고. 하이 피델리티에서 Rob은 이야기 했다. 테이프를 녹음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마음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예술과 같다고. 씨디를 사서 포장을 뜯고 궁금한 마음에 집으로 달려 갔던 순간을 기억한다. 플레이스테이션으로 음악을 들었던 엠티에서 친구는 내게 the beach boys의 pet sounds에 대해 이야기 해줬다. 그 날 밤 라디오 헤드는 진짜인지 아닌지 논쟁이 벌어졌다. 내게 pet sounds를 플레이스테이션으로 들려줬던 친구는 결혼을 해 지금 뉴칼레도냐에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나는 기억한다. 조카들이 marvin gaye의 what’s going on 바이널을 긁었을 때의 분노를. 나는 주기적으로 하드 속의 mp3를 지우지만 아쉬움이나 아까운 마음은 들지 않는다. 가끔은 내가 이것을 받기 위해 컴퓨터 앞에 매달렸던 시간을 생각하지만, 그 장면은 아무래도 낭만이 없다.
내가 그 곳에 처음 간 것은 union square에서 만난 친구와 함께 ST.Marks에 갔을 때 였다. 친구는 내게 좋은 레코드 샵이 있다고 나를 데려갔고, 그곳이 엄이 좋아한다는 그 레코드 가게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곳은 너무나 매력적이었고 그 때는 판을 사진 못 했지만 뉴욕에 있는 짧은 시간동안 그 곳을 자주 찾아갔었다. 식당일이 끝나면 11시가 가까워 있었다. 조금 서두르기만 하면 st.marks에 있는 레코드 샵에서 판을 살 수 있었다. 12시에 점원은 문을 닫는다고 했다. 그 곳에서 좋은 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 입술이 이뻤던 nico muhly의 mothertongue을 처음 본 것도 그 곳에서 였고 peter broderick의 500장 한정 바이널을 산 곳도 그 곳이었다. 아더 뮤직 또한 매력적이었지만 그 곳은 의외의 물건들이 나를 유혹하는 곳이었다. 사랑이 싹트는 공간은 아니였지만 금발에 턱수염에 배가 나왔던 점원을 G에서 보았을 때 우리는 모르는 사이지만 그 사내는 나를 알까? 하며 궁금해 하기도 했었다.
그 kims record가 문을 닫았다고 한다. 시대가 바뀌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변화가 지나간 자리는 쓸쓸하다. 두꺼비는 새 집을 주겠지만 그 집은 나의 것도 아니고 우리의 것은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 킴스레코드에서 산 White Lichen의 씨디 속에는 panda bear의 알맹이가 들어가 있었는데, 이제 나는 그것을 어디서 교환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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