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계에서 돌아오는 저녁 – 김현철

아마도 국민학교였을 것이다. 내가 살던 동네는 5층 아파트가 무한히 늘어있는 곳이었는데 난 5단지에 살고 있었다. 505동 404호로 가는 길에 504동 앞을 지나며 나는 노래를 불렀다.

“달이 몰락하고 있네.”

오랜만에 그의 판을 꺼내어 듣고 있다. 1993년 이 앨범이 나왔을 때 아마도 나의 누나가 집에 레코드를 사온 것으로 기억한다. 그 때의 김현철은 “달의 몰락”으로 대중적인 가수가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니면 그 노래 이후로 국민학생도 아는 가수가 되었던 것이나. 그리고 그 다음 앨범에서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고소영이 나레이션까지 넣어준 것으로 기억한다. 그 뒤 내가 그의 1집, 2집을 산 건 중학교 때 2단지 종합 상가에서 였다.

“횡계에서 돌아오는 저녁” 이란 타이틀은 앞으로 가요 시장에서 볼 수 없을 것만 같다. 얼마나 낭만적인가, 횡계라는 지명은. 나는 횡계에 가보지 않았다. 하지만 그 곳에 가게 되면 내가 음반을 듣고 있을 때의 그 기분을 느낄 수 있을까?

나는 어렸을 때 누나의 영향으로 같은 나이의 친구들 보다 음악을 먼저 들었다. 리즈 시절의 윤종신을 무척이나 좋아해서 아직도 015B의 1집, 2집 같은 곳에 있는 윤종신이 부른 노래는 따라 부를 수 있다. 물론 중간에 한 두 마디 가사가 틀리긴 하지만. 더 이상 고등학교 시절 좋아했던 메탈을 듣진 않지만 더 이상 윤종신의 음반을 구입하진 않지만 문득 15년도 더 된 음반을 들으면 그 때의 기억들이 희미하게 스며나온다. 그런 기억들은 애써 부정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가끔은 찾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달이 몰락하고 있네헤에~” 라고 동네 살던 친구와 따라 부르던게 생각난다. 하지만 그 친구가 중요한건 아니다. 그 순간이 기억난다는게 재미있을 뿐이다.


Grizzly Bear

그리즐리 베어를 듣고 있다. 또 얼마 전에는 department of eagles의 앨범을 들었다. 또 그 전에는 회색곰 음반을 들었다. 뭔가 자랑할 생각으로 그들의 공연에서 가지고 온 setlist를 올리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귀찮음과 망각, 자랑하고 싶으나 티는 내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일지도 모른다.

department of eagles의 음악을 들으면서 회색곰을 떠올렸지만 회색곰의 yellow house를 들었을 때 department of eagles의 음악을 연상하는 것은 어려웠다. 또한 그리즐리 베어의 음악을 들으면서 나는 department of eagles의 음악을 떠올렸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성립하지 않았다. 윌리암스버그에서 그들의 신곡이라며 들려주는 음악을 들으며 이런 생각을 했다. 그들은 자신의 멜로디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쓰고 있구나. 그렇기 때문에 two weeks라든가 cheerleader 같은 곡들이 좋았다. 전혀 그들스럽진 않지만 결국은 그나물의 그나물인 그들의 음악으로 되돌아오는 거대한 정체성. 나는 two weeks의 노래를 따라 부르곤 했는데 왜 냐하면 그 노래의 가사가 단순하여 따라 부르기 좋았기 때문이다. 또 누군가에게 불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브루클린 윌리암스버그를 걸어다니고 있을 그들을 보며 포스트락이 끝이 났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내가 말하는 포스트락은 스튜디오작업이 하나의 악기가 되어 트랙 위를 돌아다니고 있는 유령 같은 것이다. the sea and cake이 앨범을 내고 했던 “우리는 좀 더 단순해지고 싶었요.” 말이 그런 류의 포스트락의 사망선고라는 것을 안다. 아방가르드가 유행이 되는 순간 그 아방가르드의 목적은 이뤄지고 필연적으로 아방가르드는 죽을 수 밖에 없다. 나는 그리즐리 베어가 인기밴드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들이 어떤 계층을 대변하는 지도 알고 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우리는 좀 더 복잡해지고 싶어요. 그리고 남들과 다르고 싶어요.” 비를 맞으며 그들의 음악을 들었다. 벌걸음이 씩씩해졌다.

조월-네가이곳에서보게될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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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청춘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 신촌 맥도널드 앞에서 만나 마을버스를 타고 이대 후문으로 갔던 청춘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영국에서 샀다는 검은 색 드레스를 입은 친구는 어디에, 머리가 아직은 길었던 칼머리를 한 친구는 신혼여행에서 잘 돌아왔을까? 공연이 끝난 뒤 우리는 굴다리를 지나 신촌으로 되돌아갔지, 그곳이 우리의 시작점이였던 것 처럼. 신기하게도 우리는 그들의 음악을 좋아했어. 잠의 음악을 들으면서 잠 들었던 적은 몇 번이고 있었지만 그들의 음악을 들을 때는 졸리지 않았어. 그들은 그들의 발만 바라 보며 연주했지만, 내가 본 것은 그들의 등이었지만. 내가 그들의 얼굴을 온전히 본 것은 아마도 첫 정규반이 나오고 온라인 샵에 붙은 광고 사진에서 였을거야. 지금도 길을 걷다가 만난다면 알아볼 수 없겠지. 음반 두 장 이외에 아무 것도 남기지 않은 그들과 아무 것도 기록하지 않은 우리들 때문에 그들을 기억하려면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기억의 카페트를 들추어야 하지만, 알아, 그런 시간은 다시 오지 않을 거라는 것을.

조월의 음반을 발매 되고 보름이 지나고 나서야 샀어. 음반을 산 뒤 듣고 싶어서 집으로 뛰어갈 그런 열정은 사라진 것 같지만, 집에 들어와서 한 일이라곤 노트북을 열고 일상적인 정보들을 채칩한 것이지만, 나는 불을 끄고 20년 전에 산 듯 하지만 한 번도 전구를 갈아 낀 기억이 없는 스탠드에 불을 켜고 그의 음악을 들어. 왜 지금일까 라는 생각을 해. 왜 나는 지금 이 음악을 듣고 있는가를 생각해. 왜 나는 그의 음악을 들으면서 지난 과거의 한 순간과 웃음과 그 중심에 있는 지겨운 밴드를 떠올리는 지 모르겠어. 그 때의 일상적이거나 혹은 대단하지 않았던 사건들이 왜 지금에 와서 내게 바꿀 수 없는 추억이 되었는지 모르겠어. ‘우리는속옷도생겼고여자친구도늘었다네’ 띄어쓰기가 되어 있지 않은 그들의 앨범 커버를 보고 띄어쓰기가 되어있지 않은 ‘네가이곳에서보게될것들’의 커버를 보았어. 유사점이란 이런 소소한 것들, 그리고 다른 사람이 그렸지만 같은 사람의 그림이라고 생각이 드는 커버 같은 것들. 다만 밴드 맴버의 이름이 사라지고 남은 것은 한 사람의 이름이지만, 그들이 맴버간의 불화로 밴드를 그만두었다고 어디 다리 하나 건너 들은 것 같지만, 그런 것들이 이 음악을 들었을 때의 나의 감정을 어떤 식으로, 그것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은 나의 마음을 어떻게 설명을 할 수 있을까 싶어. 아무 것도.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나는 28살이 되었고, 너는 29살이 너는 30살이, 너는 25살이, 우리는 모두 그 때의 모습일랑 남아있지 않았겠지만, 나는 궁금해. 우리가 다시 10년, 크랭키의 15주년, 서브팝의 20주년과 같은 시간을 보냈을 때, 서로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웃을 수 있을런지에 대해서. 너는 오는 길에 내게 식빵을 사오라고 했고 우리집에는 아직 많이 남아있는 식빵이 있지만, 너는 그들에 대한 진을 만들고 싶다고 누군가에게 이야기 했다지만. 아직은 겨울 바람이 남아 있는 늦은 밤 거리를 걸어가 하고 싶은 것은 농담이나 하면서 자랑을 늘어놓으며 웃고 떠드는 것.

st. marks엔 kims record가 없다.

nytimes 기사

모든 것들이 사라져 간다. 김혜수가 음악에 맞춰서 춤을 추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city beat은 오뎅빠로 바뀌었고 다시 오래 지나지 않아 왓슨스로 바뀌었다. 그런 미용 마트로 바뀔 꺼 였으면 바뀌지나 말지. 지금 생각하니 점원의 ‘로스트인트뤤스뤠이션’ 발음도 매력적이었던 것 같은데…

두꺼바 두꺼바 헌 집 줄께 새 집 다오.

인터넷이 모든 것을 죽이고 있다고 어느 술 자리에서 말했던 선배는 인터넷에 블로그진을 만들었다. 남아 있는 종이로 된 음악잡지 보다는 나은 수준이지만 사실 인터넷이라는 매체는 낭만이 없다. 그로 별로 멋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와 친구들이 하는 아워타운도 인터넷이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와 동시에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난 아직도 일찍이 망해버린 MDM을 가끔 보곤 하는데 그 이유는 누런 종이를 넘겨보는 맛이 있기 때문이다. 절대 핀업걸 때문이 아니다. 하지만 그 잡지가 종이가 아니였다면 다시 펴 볼 일은 없었을 것이다. 레코드 샵들은 망했지만 그 자리를 꽤차고 들어온 인터넷 음원 업체들은 한 없이 구렸다. 음악을 돈 주고 할 수 있는 일이란, 미니 홈피에 음악을 걸어 놓는 것 뿐이었다. 아이튠스를 바란 것도 아니다. 대자본 앞에서 어떤 사이트가 개성과 안목을 가질 수 있을까? 나는 아직도 판을 좋아한다. 물질인 씨디와 바이널, 테이프는 매끈한 아이팟 속에 잡히지 않는, 음질은 별반 차이 없다는 mp3이 가질 수 없는 기억을 쥐고 있다. 오래 전 나와 같이 절을 다녔던 사람은 내게 이야기 했다. 내가 선물해 준 mixtape를 아직 가지고 있다고. 하이 피델리티에서 Rob은 이야기 했다. 테이프를 녹음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마음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예술과 같다고. 씨디를 사서 포장을 뜯고 궁금한 마음에 집으로 달려 갔던 순간을 기억한다. 플레이스테이션으로 음악을 들었던 엠티에서 친구는 내게 the beach boys의 pet sounds에 대해 이야기 해줬다. 그 날 밤 라디오 헤드는 진짜인지 아닌지 논쟁이 벌어졌다. 내게 pet sounds를 플레이스테이션으로 들려줬던 친구는 결혼을 해 지금 뉴칼레도냐에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나는 기억한다. 조카들이 marvin gaye의 what’s going on 바이널을 긁었을 때의 분노를. 나는 주기적으로 하드 속의 mp3를 지우지만 아쉬움이나 아까운 마음은 들지 않는다. 가끔은 내가 이것을 받기 위해 컴퓨터 앞에 매달렸던 시간을 생각하지만, 그 장면은 아무래도 낭만이 없다.

내가 그 곳에 처음 간 것은 union square에서 만난 친구와 함께 ST.Marks에 갔을 때 였다. 친구는 내게 좋은 레코드 샵이 있다고 나를 데려갔고, 그곳이 엄이 좋아한다는 그 레코드 가게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곳은 너무나 매력적이었고 그 때는 판을 사진 못 했지만 뉴욕에 있는 짧은 시간동안 그 곳을 자주 찾아갔었다. 식당일이 끝나면 11시가 가까워 있었다. 조금 서두르기만 하면 st.marks에 있는 레코드 샵에서 판을 살 수 있었다. 12시에 점원은 문을 닫는다고 했다. 그 곳에서 좋은 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 입술이 이뻤던 nico muhly의 mothertongue을 처음 본 것도 그 곳에서 였고 peter broderick의 500장 한정 바이널을 산 곳도 그 곳이었다. 아더 뮤직 또한 매력적이었지만 그 곳은 의외의 물건들이 나를 유혹하는 곳이었다. 사랑이 싹트는 공간은 아니였지만 금발에 턱수염에 배가 나왔던 점원을 G에서 보았을 때 우리는 모르는 사이지만 그 사내는 나를 알까? 하며 궁금해 하기도 했었다.

그 kims record가 문을 닫았다고 한다. 시대가 바뀌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변화가 지나간 자리는 쓸쓸하다. 두꺼비는 새 집을 주겠지만 그 집은 나의 것도 아니고 우리의 것은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 킴스레코드에서 산 White Lichen의 씨디 속에는 panda bear의 알맹이가 들어가 있었는데, 이제 나는 그것을 어디서 교환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기억, hiroshi sugimoto

친구의 블로그에서 사진을 보았다. hiroshi sugimoto의 Seascapes 시리즈 중에 하나였을 것이다. 그것은 너무나 고요해 보여서 한동안 바라만 보고 있게 되었다.

그 사람의 다른 작품도 보고 싶어서 간단하게 검색을 했다. 그 사람의 작품 중 낯이 익은 사진이 있었다. Fidel Castro, 1999년 작품이었다. 나는 이 사진을 본 적이 있다. DUMBO에 갔을 때 사람을 뚫어 보는 듯한 사진을 한 동안 바라 보았다. 그리고 사진 옆의 중형카메라를 사용하여 장시간 노출했다는 설명도 읽었었다. 그리고는 수첩에 작가의 이름을 적었다.

수첩에 적힌 수 많은 아티스트를 떠올린다. 그들의 작품은 나의 관심을 사로 잡았고 나는 기록했지만 기록은 생명을 잃었다. 기록은 주변 친구의 이야기가 있을 때 다시 살아나 나의 것이 되었다. 그 기록이 확신에 찬 것이라기 보다 기계적인 행동이었기 때문일 지 모른다.

hiroshi sugimoto의 사진을 바라 본다.
사진은 그의 사진의 검색 결과를 다는 것으로 대신 하려 한다. 맞춤법은 늘 어렵다. 취향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Lina Scheynius’ 사진집

그녀의 사진을 처음 본 것은 누구의 맥air 바탕화면에서 였다. 검은 물에서 하얀 플래쉬를 터트린 사진이었는데 누구의 사진인지 몰라도, 픽셀은 좀 깨진 듯 싶었지만 마음에 들었었다.

사진을 좋아한다고 하지만, 음악을 좋아하는 만큼의 노력을 안 기울인다. 새로운 작가를 찾는 것도 게으르고 기존의 알려진 작가의 이름도 정확히 알고 있는 것도 많지 않다. 그저 늘 나의 안목을 믿을 뿐이었다. 몇 년 사진을 찍었다고.

그녀의 이름을 우연히 발견하였다, 사진을 이야기 하는 블로그에서. 그녀의 flickr를 찾았고 contact로 등록했다. 아마도 그녀도 나를 contact로 했을 것이다, 기억이 정확하다면. 그녀의 contact의 수는 4680명을 넘는다. 나는 그 중 하나이다.

그녀의 사진집이 나왔다. (사진집은 이 곳에서 주문할 수 있다.) 나는 이것을 사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나는 노력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그녀의 flickr 에서 사진을 보았다. 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위의 사진을 보며 “타조”였으면 좋겠다고 했다.


Ladies and Gentlemen, the Fabulous Stains

Ladies And Gentlemen, The Fabulous Sta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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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를 보다가 눈이 멈췄다. 이 사진 한 장 때문이었다.

이런 머리를 (또한 그것과 땔 수 없는 attitude) 한 친구가 있으면 괜찮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몇 일 전에는 taxi driver에 나온 Robert De Niro의 모히칸 머리를 보면서 내가 사회에 반항을 표출 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게 남지 않았구나 라고 생각했다. 나란 사람은 한국 사회에 시큰 둥 해도 그것을 벗어나기 보단 그 사회에 편입되기 위해 노력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물론 드니로와 이 사진의 Diane Lane이 같은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어디까지나 외모의 일정 부분이 겹치는 것 뿐이니까.

Ladies And Gentlemen, The Fabulous Stains은 1982년에 나온 영화이다. 영화 DVD는 2008년에 나왔다. youtube에는 길거리의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아냐고 물어보는 영상이 있었다. 거리를 걷는 많은 이들은 “모른다.”라고 했다. 트레일러를 보았다.

이 영화가 보고 싶어졌다.

Beirut, 새 비디오를 공개하다.

Beirut, 그의 첫 음반과 다음 EP를 사랑했지만 그의 두번째 음반은 구입조차 하지 않았다. 그가 takeaway shows 들려줬던 새 노래들이 지나치게 낭만적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프랑스로 가다니. ‘니스’였던가? 그의 음악적 배경은 Zach이 밝히길 마그네틱 필즈와 뉴트럴 밀크 호텔, 발칸반도의 아름다운 밴드였다. 하지만 그는 이런 것에 얽매이지 않으려 하는 듯 하다. 새 노래를 만들기 위해 이번에는 Mexico의 Oaxaca로 갔다고 하니. 내가 만난 멕시코 남자들의 대부분은 여자에 관한 희롱을 입에 담고 멕시코에는 마누라와 아들내미를, 뉴욕에는 산초를 3명이나 두며 ‘last night quattro’ 라고 자랑하는 마초들 뿐이었다. 그들은 게로 라는 힙합을 들었고, 작은 키에 근육질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가 멕시코에서 19인조 밴드를 만났고 그들이 레코딩을 도와줬다는 이야기를 들어도 그의 음악의 무엇이 멕시코를 드러내는지 잘 모르겠다. 프랑스에서 녹음한 음반을 들고 나왔을 때도 무엇이 프랑스적인지 몰랐다, 내가 가지고 있는 편견을 그의 노래에서 발견할 수는 있었지만.

그의 새 음반, 이것은 EP라고 한다,은 또 다른 EP인 Holland,Zack Condon이 집에서 녹음한,와 함께 발매된다고 한다. 나는 이 곡에서 그의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의 느낌을 다시 받았다. 소년이 한 것 멋을 내고 어른처럼 노래를 부른다. 노래가 끝난 뒤 소년은 수줍게 웃는다.

이옥경, WNYC radio에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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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다운타운 뮤직 씬에서 활동하는 그녀의 음악과 인터뷰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녀의 음악에 대해 잘 알 수 있는 기회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다음 달에 새 CD가 나온다고 하네요.

혹시…

이옥경(okkyung lee)를 모르는 건 아니겠지요? (사실 잘 모를 수도 있습니다)

목소리 들으니 반갑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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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서 바로 듣을 수 있게 하려고 했는데 안 붙네요.

여기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겨울에는 역시 회색곰이 아니라 “Department of eagles”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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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여자친구에게 Thanks a lot.

요즘 뉴욕의 윌리암스버그에서 가장 뜨거운 밴드라고 하면 회색곰, Grizzly Bear가 있을 것 같아. 아마도 그들은 그 젊은이들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어. 그들의 음악, 그들의 패션, 그들의 생활 양식 같은 걸 말이야.

Grizzly Bear에는 Daniel Rossen이 키보드와 기타, 노래를 담당하고 있는데 작년 2008년도에 그의 대학시절 친구인 Fred Nicolaus와 함께 작업한 밴드의 음반이 나왔어. 2003년 첫 음반을 만든 뒤 5년만의 새 앨범이었지.

Department of Eagles – In ear park

그들의 음악은 정말로 좋아. 코러스를 쓰는 것을 피해가면서 멜로디를 잡아내거든. 그 멜로디는 정말로 “그들”의 멜로디라고 할 수 있어. 다른 밴드에게서 이런 멜로디를 듣는 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지. 특히 Daniel Rossen의 목소리는 음악에 앞서 스타일을 규정하는 힘이 있어. 그의 목소리를 들으면 심심한 노래라도 회색곰의 노래처럼 바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하지만 “그들”이 Department of Eagles인지 Department of Grizzly Bear인지는 모르겠어. 몇 몇 곡들은 Grizzly Bear의 미발표곡을 듣는 기분이 들거든.

이 음반에는 회색곰의 맴버 2명이 참여하고 있어. 음반 프로듀싱에서 엔지니어링, 베이스, 관악기, 일렉트로닉, 드럼까지 그들의 손을 거쳤어. 그래서 회색곰 같은 음악이 나왔을지도 몰라. 회색곰은 지금 새 음반을 녹음 중에 있는데 그래서 걱정되는 건데 새 음반이 Grizzly Eagles이 되면 어쩌지?

하지만 회색곰 이중대라고 해도 아, 이 앨범 진짜로 좋네.

그들의 음악이 궁금하면 여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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